쫄깃한 낙지의 생명력, 양평의 활기찬 철판 위에 피어나다
경기도 양평. 남한강 물빛이 고즈넉하게 흐르는 이곳에, 식사 시간만 되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작은 식당이 있다. 문을 열기도 전에 대기 줄이 늘어서고, 식당 안에서는 후끈한 열기와 함께 고소하고 매콤한 냄새가 진동한다. 그 냄새의 주인공은 바로 산낙지 철판볶음. 이름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하는 이 메뉴는, 탱탱하고 부드러운 낙지의 식감과 화끈한 양념의 조화로 많은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이 식당의 주인장 오승도(61) 씨는 낙지를 다룬 세월만 30년이 훌쩍 넘었다. 서해안과 남해안 곳곳의 산낙지를 직접 찾아가며 품질 좋은 재료를 구하고, 어떤 낙지가 볶음용으로 가장 적합한지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가다. 그는 “낙지는 크기가 커야 식감이 산다”고 강조한다. 흔히 낙지볶음에 사용하는 중간 크기의 낙지 대신, 이 집에서는 큼지막한 산낙지만을 고집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철판에서 빠르게 익혀내더라도 안쪽의 수분이 탱글하게 유지되어, 씹을 때마다 쫄깃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깊은 감칠맛의 비밀, 바지락과 건새우 육수
많은 손님들이 "이 집 낙지볶음은 단순히 매운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혀끝에 다가오는 매운맛 뒤에는 감칠맛이 오래 남기 때문이다. 그 비밀은 바로 육수에 있다. 오 사장은 낙지를 볶기 전에 반드시 따로 만든 육수를 사용한다. 바지락과 건새우를 듬뿍 넣고 한참을 푹 고아내는 이 육수는 바다의 향과 감칠맛을 꾹 눌러 담고 있다.
바지락은 끓는 동안 내장을 짜내듯 시원한 국물 맛을 우려내고, 건새우는 특유의 고소함과 깊은 해산물 향을 더한다. 여기에 대파와 마늘, 약간의 무를 넣어 잡내를 잡아내면, 그야말로 ‘낙지를 위한 바다 국물’이 완성된다. 이 육수는 단순히 낙지를 데치거나 볶을 때 첨가되는 조미용이 아니라, 소스의 기본이자 맛의 중심축 역할을 한다.
직접 만든 양념장의 농도
이 집의 양념장은 시중의 양념과는 확연히 다르다. 처음 한 숟가락 맛보면 달콤하면서도 깊은 매운맛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건 오 사장이 직접 개발한 비율 조정 양념장 덕분이다. 고춧가루는 두 종류—국산 태양초와 매운맛이 강한 청양고춧가루—를 섞어 쓴다. 여기에 다진 마늘, 다진 생강, 멸치액젓, 매실청, 그리고 간장의 조화가 더해지면서, 단맛과 감칠맛, 그리고 불맛이 균형을 이룬다.
특이한 점은, 이 양념장을 하루 이상 숙성시킨다는 것이다. 숙성 과정 동안 매운맛은 더욱 부드러워지고, 각 재료의 향이 어우러져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강렬한 풍미를 낸다. 이렇게 만든 양념장은 철판 위에서 낙지와 새우, 각종 채소에 골고루 배어들며 ‘이 집만의 맛’을 완성한다.
고추기름의 마법, 팽이버섯의 놀라운 역할
오 사장은 매콤한 요리를 만들 때마다 고추기름의 품질을 가장 우선으로 본다. 그러나 이 집의 고추기름엔 남다른 비법이 숨겨져 있다. 바로 팽이버섯을 이용한 고추기름이다.
뜨겁게 달군 기름에 말린 고추와 함께 팽이버섯을 넣어 튀기듯 볶아내면, 버섯에서 자연스러운 단향과 고소한 풍미가 우러나온다. 팽이버섯은 기름을 만나면서 오도독하게 건조되고, 그 향이 고추기름 속에 고스란히 스며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고추기름은 일반적인 매운 기름과 달리 향긋하면서도 깊은 맛을 낸다. 이 고추기름을 철판에 두르고 낙지를 볶기 시작하면, 매운 향이 퍼지는 동시에 코끝을 자극하는 구수한 냄새가 퍼지며 식욕을 자극한다.
철판 위의 한 폭의 그림
커다란 철판 위에는 신선한 채소가 먼저 담긴다. 양배추, 양파, 부추, 그리고 당근까지 알록달록한 빛깔이 어우러진다. 이어 탱글탱글한 산낙지와 새우가 올라가고, 준비된 양념장이 붉은 물결처럼 전체를 덮는다. 철판에 불길이 닿는 순간, ‘치익’ 소리와 함께 김이 피어오른다.
오 사장이 주걱을 능숙하게 놀리며 낙지와 채소를 뒤섞는 모습은 마치 공연을 보는 듯하다. 손목의 움직임에는 숙련된 장인의 감각이 깃들어 있다. 그는 불의 세기를 서너 번 조절하면서 낙지가 과도하게 익어 질겨지지 않게 한다. 낙지는 순식간에 초롱초롱한 윤기를 띠며 변하고, 채소는 아삭함을 그대로 유지한 채 붉게 물든다.
손님들의 미소로 완성되는 한 끼
뜨거운 철판에서 방금 내려온 낙지볶음 한 젓가락을 먹는 순간, 누구나 감탄사를 내뱉는다. 입안에서 낙지가 ‘톡’ 하고 터지듯 쫄깃한 반응을 보이다가 곧 부드럽게 풀린다. 고추기름의 매운 향이 코끝을 스치고, 바지락 육수의 은은한 감칠맛이 혀끝에 남는다. “이게 진짜 낙지볶음이지!”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손님들의 표정에서 만족스러움이 느껴진다.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이 식당은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의 반응에 늘 귀 기울인다. 오 사장은 “철판 위에서 낙지와 채소가 어우러지는 그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불 조절이 섬세해야 하고, 양념이 눅지 않게 배어야만 완벽한 맛이 나온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철판 볶음밥
다 먹고 나서도 식사가 끝나지 않는다. 손님들이 입을 모아 기다리는 진짜 별미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바로 철판 볶음밥이다. 남은 양념에 밥을 넣고 김가루와 참기름, 그리고 잘게 썬 김치 약간을 더해 밥을 펼쳐놓는다. 그러면 철판 위에서 “지익-” 하는 소리가 들리며 볶음밥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하지만 이 집의 방식은 조금 특별하다. 밥을 한 번 볶은 뒤 잠시 그대로 펼쳐둬서 노릇노릇하게 굽힌 후, 다시 한 번 뒤적여 준다. 이렇게 해야 밥알의 겉면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살아난다. 이중 볶음 과정을 통해 밥에서는 누룽지 특유의 고소한 향이 퍼지고, 낙지 양념의 매콤 달큰한 맛이 알알이 배어든다.
손님들은 철판 앞에서 주인장이 볶는 손놀림을 바라보며 눈과 코, 입이 모두 즐겁다.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긁어먹은 뒤, “오늘 점심 진짜 잘 먹었다”는 미소와 함께 자리를 뜨는 사람들. 그 만족스러움이 바로 이 식당의 가장 큰 자산이다.
전통과 정성으로 지켜낸 맛
산낙지 철판볶음은 단순한 한 끼 식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신선한 해산물, 숙성된 양념, 그리고 정성으로 만들어낸 불맛이 어우러진, ‘장인의 손맛’이 응축된 요리다. 오승도 씨는 “요즘은 빠른 조리, 간편한 음식이 대세지만, 손이 많이 가도 진짜 맛은 정성이 담긴 음식에서 난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이 집의 낙지볶음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손맛의 가치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철판 위에서 팔딱이며 익어가는 낙지를 보고 있자면, 음식이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따뜻한 연결이라는 생각이 든다.
양평의 맑은 공기 속에서 퍼지는 매콤한 향, 그리고 손님들의 웃음소리가 어우러진 풍경. ‘볶고 조리고, 또 볶는’ 정성과 열정이 담긴 산낙지 철판볶음의 철판 불빛은 오늘도 식당 안팎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